만지는 마음으로부터

‘만지는 마음’은 2021년 서울 탈영역 우정국 '초대의 감각' 전시에서 선보인 작업이다. 주최 측으로부터 무장애 barrier free 전시를 준비하고 있는데 그것과 관련한 입체 작업을 해달라는 제안을 받았다. 처음에는 약간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지금 돌아보면 이 제안은 나에게 다른 의미에서 어떤 ‘숨 쉴 구멍’을 제공했었던 것 같다.

그 당시, ‘나만의 목소리’를 찾아 가장 ‘나다운 작업’을 한다는 것이 나에게는 어떤 괴로운 짐으로 느껴졌다. 작가들은 각자 나름의 이유로 작업을 해 나간다. 하지만 그 때의 나는 ‘작업’이라는 것을 어떤 이유로 계속 해 나가야 할까? 그런 질문이 맴돌았던 시기였기에, 이 전시의 제안이 미묘한 방식으로, 나에게는 탈출구로 느껴지기도 했다. ‘작업’은 보통 작가 본인으로부터 시작하는 것 같다. 내가 어떤 것에 관심이 있는지, 어떤 것에 대해 목소리를 내고 싶은지, 그런데 이 전시는 초점이 ‘대상’이었다. ‘나’를 벗어나 ‘대상’에 대해 상상하고 나와 그 대상 사이 어딘가의 접점을 찾으려는 노력이 나에게는 새로운 창작의 출발점이 되었다.

이 전시를 준비하며 나는 어떤 방식으로든 나와 연결되었었던, 장애를 지닌 이들에 대해 떠올렸다. 길을 지나다니며 봤던 휠체어를 탄 사람, 지팡이를 짚고 더듬더듬 길을 찾아 걷던 시각 장애인, 내 입 모양을 보고 소통을 하던 학교 선배부터 나와 전혀 대화가 통하지 않았던 발달장애인 동생, 그리고 시력이 좋지 않아 항상 벽에 큰 글씨를 써 붙여놨던 나의 외할머니…. 난 항상 그들에게 어떤 벽을 느꼈는데, 처음에는 나도 그게 장애로 인한 벽이라 생각했었지만, 그건 장애 유무를 떠나서 누구를 만나든 항상 내가 느끼던 벽이었다.

‘그들의 마음을 알고 싶다는 것’ , 그리고 ‘내 마음을 알아줬으면 하는 것’. 이 작업은 작업 제목 그대로 ‘만지는 마음’, 마음을 만지는 것에 대한 것이었다. 마음이라는 말은 참 오해되기가 쉬운 것 같다. 유치해지거나 추상적으로 뭉뚱그려지기 쉬워서인지 현대미술에서는 특히 이 단어를 기피하는 것 같다. 하지만 마음은 항상 나에게 중요한 주제였다.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든 끄집어 낸 것이 추상조각의 시작이라고 생각 한다. 나는 만질 수 있는 마음을 상상하고 그것을 지구 상에 있는 가장 기본적인 물성들로 더듬더듬 번역했다.

이 작업을 만지고 경험한 관객 의 감상 중 가장 기억에 남았던 것은, 시각장애인 관객이었는데, 이 물성들이 익숙한 물성이라 좋았다는 것이었다. 너무 낯설지 않아서 두렵지 않았고, 누군가의 목소리로 텍스트를 들으며 이 오브제의 겉과 속을 만지면서 자신의 삶 속의 가장 익숙했던 기억들을 떠올렸다는 것이다.

솜으로 만든 테이블은 휠체어를 탄 이가 손으로 쉽게 물건을 집을 수 있는 높이로 제작되었고, 솜으로 마감이 되어 있기에 모서리에 다치는 위험 없이 작업에 손을 뻗어 만질 수 있다.

테이블 위에 올려진 오브제들은 각기 금속, 나무, 밀랍 등 각기 다른 물성으로 제작되었는데 그것은 각기 다른 마음을 상징하는 오브제였다. 신체 사이즈, 슈퍼싱글 정도 사이즈의 솜 테이블에 올려두었는데 각기 올려 놓은 오브제들이 오장육부같은 실제적인 장기처럼 보였으면 좋겠다 싶기도 했다. 두꺼운 두께의 솜 테이블에 올려져 있었기에 무거운 것을 내려놓을 때는 테이블이 깊숙히 가라앉았다.

노트에는 내가 그 오브제들을 제작하며 생각했던 것들을 짧은 에세이로 적어 넣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분류되어 있고 딱딱한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이것도 나의 어떤 시도였다. 어느 누가 '마음'을 가장 명확하게 얘기해 줄 수 있을까?그리고 소책자의 앞 부분에는 이 글을 읽기 힘든 누군가가 있다면 나를 대신하여 목소리를 빌려달라는 부탁을 넣었다.

분류나 개념이 중요한 것도 아니었고 아주 잘 쓴 글도 아니었지만, 작가의 의도가 담긴 이 글을 누군가가 또 다른 누군가를 위해 읽어준다면 그것만으로 가장 특별한 경험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작가가 어설프게나마 최대한, 테이블의 높이를 맞추고, 관객이 자신의 손안에 쥐는 오브제가 주는 촉감이 겪었던 어떤 순간과 비슷한 경험으로 마주친다면 그게 작업으로서 좋은 경험이겠다고 생각했다. 그게 내가 생각했던 ‘만지는 마음’이었다.

사람은 겪은 만큼 아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내가 아는 모든 것 대부분이 쓸데없다고 생각한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다 아는 양 떠들 때도 많다는 생각을 한다. 내가 직접 경험한 것 말고는 나는 안다고 말할 수 없다. 심지어 그것도 내가 아는 것만큼이다. 그래서 작품창작이나 워크숍에서 아주 작은 경험이라도 실제적인 것을 직접 느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만지는 마음’을 제작한 지 약 5년이 된 지금, 이 작업부터 내 이야기를 시작하는 이유는 2021년 이 작업을 하며 든 생각들이 지금의 내 작업을 지탱해 준다는 생각 때문이다. 앞으로 창작을 해 나가며 든 생각들을 이 공간에 나누려고 한다.